나두삼국지Nadoo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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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CONNECTIONS

삼국지와 한반도

삼국지 시대의 한반도. 고구려와 요동 공손씨, 낙랑·대방군, 238년 사마의의 공손연 정벌, 244–245년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과 환도성, 삼한과 군현, 부여. 연도는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적습니다.

「동이전」, 삼국지가 남긴 한국 고대사 The Dongyi chapter 정사

진수 『삼국지』 「위서」 맨 끝 「오환선비동이전」에는 부여·고구려·동옥저·읍루·예·한(마한·진한·변진)·왜가 차례로 실려 있습니다. 3세기 한반도와 만주를 직접 적은 가장 오래된 묶음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위가 238년 요동을 차지하고 244–245년 고구려를 친 뒤 모은 정보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시대의 전쟁이 곧 우리 고대사의 기록이 남은 계기이기도 합니다.

고구려와 요동의 공손씨 Goguryeo and the Gongsun 정사

공손도·공손강·공손연 3대는 189년 무렵부터 238년까지 요동을 다스렸습니다. 중원이 싸우는 동안 이들이 고구려와 가장 가까운 «중국»이었습니다.

197년 고구려 왕위 다툼에서 형 발기가 공손씨에게 의지했고, 「동이전」은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고구려를 쳤다고 적습니다. 공손도는 부여왕 위구태에게 집안 딸을 시집보내 고구려와 선비를 견제했습니다.

낙랑군과 대방군 Lelang and Daifang 정사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하고 둔 군현의 하나입니다. 후한 말 공손씨가 이를 손에 넣었고, 건안 연간에 낙랑 남쪽을 떼어 대방군을 세웠습니다(정확한 해는 기록에 없음).

238년 이후 위가 두 군을 직접 다스렸습니다. 한(삼한)과 왜가 대방을 통해 위와 교섭했다고 「동이전」이 적습니다. 두 군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에는 학설이 갈립니다.

238년, 사마의의 요동 정벌 Sima Yi in Liaodong (238) 정사

연왕을 칭한 공손연을 치러 사마의가 4만 군으로 원정했습니다. 장마 속에 양평성을 포위해 함락하고 공손연 부자를 죽였습니다.

「동이전」 고구려조는 이때 고구려 왕 궁(宮, 동천왕)이 주부·대가에게 군사 수천을 주어 위군을 도왔다고 적습니다. 공손씨가 사라지며 고구려와 위는 국경을 직접 맞대게 됩니다.

동천왕과 관구검, 환도성 (244–245) King Dongcheon vs Guanqiu Jian 정사

242년 동천왕이 요동 서안평을 치자, 위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244년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비류수와 양구 일대에서 고구려군이 패했고 환도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듬해(245) 다시 공격이 이어졌고, 동천왕은 옥저 방면으로 피했습니다. 현도태수 왕기가 뒤쫓았고, 그 길에 부여에 들러 군량을 받았다고 「동이전」 부여조가 적습니다.

『삼국사기』는 이 침공을 동천왕 20년(246)에 두고, 밀우와 유유가 목숨을 걸고 왕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중국 쪽 기록과 연도가 엇갈려, 이 사이트는 정사 연도(244–245)를 기준으로 하고 『삼국사기』 연도를 함께 적습니다.

1906년 중국 지린성 집안(환도성 일대로 보는 곳)에서 관구검의 공을 새긴 비석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관구검기공비).

삼한과 군현 The Samhan 정사

「동이전」 한조는 마한 50여 나라, 진한·변진 각 12나라를 적습니다. 변진에서 나는 철을 한·예·왜와 낙랑·대방이 모두 사 갔다고 합니다.

정시 연간에 군현이 진한 여덟 나라를 낙랑에 넘기려 하자, 신지들이 분노해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고 대방태수 궁준이 전사했습니다. 이 일의 정확한 해와 «신지»가 누구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부여 Buyeo 정사

부여는 고구려 북쪽, 오늘날 쑹화강 유역의 나라였습니다. 공손도는 부여왕 위구태에게 종녀를 시집보냈고, 관구검의 고구려 원정 때 부여는 위군에게 군량을 대 주었습니다.

「동이전」 부여조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 가뭄이 들면 왕을 탓하는 풍속 등도 적습니다.

관우 신앙과 조선 Guan Yu worship in Joseon 정사

임진왜란 때 들어온 명군이 관우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1601년 무렵 서울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동묘)가 완공되었습니다. 『삼국지연의』가 조선에서 널리 읽힌 것과도 이어집니다.

연표 · Timeline

해일근거표시
160–180년대후한 환제·영제 말, 한(韓)과 예(濊)가 강성해 군현이 통제하지 못함『삼국지』 「동이전」 한정사
189 무렵공손도가 요동태수로 부임해 자립. 고구려·오환을 침「공손도전」정사
194고구려 고국천왕, 을파소의 건의로 진대법 시행『삼국사기』 고국천왕 16년정사
197고국천왕 사후 산상왕 즉위, 형 발기가 반발해 공손씨에게 의지「동이전」 고구려, 『삼국사기』 산상왕 원년정사
204 무렵(추정)공손강이 낙랑군 남쪽을 떼어 대방군 설치. 기록은 «건안 연간»뿐「동이전」 한전해지는 이야기
207원상·원희가 요동으로 달아났다가 공손강에게 죽음「무제기」·「공손도전」정사
209고구려,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김『삼국사기』 산상왕 13년정사
227고구려 동천왕 즉위『삼국사기』정사
228공손연이 숙부 공손공의 자리를 빼앗음「공손도전」정사
233손권이 공손연에게 사신을 보냈으나 공손연이 사신을 죽여 위에 바침. 달아난 오의 관리 일부가 고구려를 거쳐 돌아감「오주전」 주 『오서』정사
236동천왕이 오의 사신 호위를 죽여 그 머리를 위의 유주로 보냄『삼국사기』 동천왕 10년정사
238사마의가 양평을 함락해 공손연을 멸함. 고구려가 군사 수천을 보내 도움. 위가 낙랑·대방을 직접 다스림『진서』 「선제기」, 「동이전」 고구려정사
242동천왕이 요동 서안평을 공격『삼국사기』 동천왕 16년정사
244–245위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쳐 환도성 함락. 동천왕이 옥저 방면으로 피하고 현도태수 왕기가 추격. 왕기는 부여에서 군량을 받음「관구검전」·「동이전」 고구려·부여정사
246『삼국사기』가 관구검 침공을 두는 해(동천왕 20년). 밀우·유유의 활약 이야기『삼국사기』 동천왕 20년전해지는 이야기
정시 연간(240–249)대방군 기리영을 한의 신지들이 공격, 대방태수 궁준 전사. 이후 두 군이 한을 눌렀다고 적음「동이전」 한정사
247『삼국사기』: 환도성이 전란으로 부서져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김『삼국사기』 동천왕 21년. 이 «평양»의 위치는 학설이 갈립니다전해지는 이야기
280 전후마한·진한이 진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냄『진서』 「동이전」정사

근거로 삼은 기록

  • 진수 『삼국지』 · 「위서」 오환선비동이전(부여·고구려·한), 「공손도전」, 「관구검전」
  • 배송지 주 · 「오주전」 주 『오서』
  • 방현령 등 『진서』 · 「선제기」, 「동이전」
  • 김부식 『삼국사기』 · 「고구려본기」 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